북극해 탐험기

김준영 중령 (해사 46기)의 국방일보 기고내용 입니다. 신세기함 함장시절 작전관으로 같이 근무한 미국 해양학 박사 입니다. 지금 나는 얼음 바다 너머로 하얀 눈이 넓게 펼쳐져 있는 북극해 한가운데에 서 있다. 현재 위치 북위 75도32분, 동경 176도04분. 시속 1㎞의 속력으로 떠다니는 끝을 알 수 없는 얼음덩어리. 지난 7월 21일, 아라온호를 타고 인천항을 출항한 지 27일 만에 닻을 내린 이곳은 바로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린 거대 유빙의 끝자락이다. 아라온호는 북극해처럼 춥고 얼음이 많은 극한의 환경에서 과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건조된 우리나라 유일의 쇄빙선이다. 이번 항해에는 ‘북극해 해양환경 종합 관측’을 위해 미·일·중을 비롯한 7개국 53명의 전문가가 편승했다. 아라온호는 1m 두께의 얼음을 깨면서 3노트(시속 약 6㎞)의 속력으로 항해할 수 있다. 처음으로 해빙(海氷)과 접촉했을 때, 얼음을 부수면서 생기는 충격으로 선체는 심하게 흔들렸고 굉음이 울렸다. 파도가 아닌 제3의 물체와의 접촉, 그리고 잇따라 느껴지는 둔탁하고 무거운 진동. 혹시 아라온호 항해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얼음은 그 자체가 아라온호 항해의 목표이면서 동시에 장애물이었다. 일반 해역이라면 해도와 레이다만으로 충분히 항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북극해에서는 이것만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론상 위도가 높아질수록 얼음은 더 강해지고 두꺼워지지만, 온난화가 진행된 이제는 녹아서 흘러내린 위협적인 유빙을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른다. 사전에 해빙과 관련된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아라온호는 두꺼운 얼음에 고립되거나 충돌로 인해 항해 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이번 항해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성과는 최근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북극해 해빙의 급속한 감소와 이에 따른 북극 항로 운항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유빙들이 비교적 위도가 낮은 북위 75도 해역까지 흘러내려 오고 있었고, 작은 얼음 조각들은 북위 73도 부근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20년 후반에는 상선들이 북극해를 경유해 유럽과 북미지역으로 운항하는 것이 일반화될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북극해에는 전 세계 미개발 천연자원의 30% 이상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은 북극해 주변국은 물론 전 세계의 뜨거운 물밑 경쟁이 북극해로 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 경제의 99%를 해상교통로에 의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북극해 안보환경 변화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음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북극해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이고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라온호와 함께 짧은 북극해 경험을 하면서, 장차 북극 바다를 수놓을 자랑스러운 태극기 행렬과 해양에서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한민국 해군의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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